사람은 좋은데 뇌가 해맑은 과장님

 애니바디의 회사 잡담 

나보다 10살이나 많았던 무능력 그 자체인 과장님 

생각해 보면 

나는 상대적으로 많은 일터와 회사에서 일을 해 본 경험이 있다. 호주에서도 다양한 직종을 경험했으며 한국에서도 여러 회사들을 경험해 보았다. 직접적으로 일한 곳도 있고 다른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된 곳도 있었고 해서인지 나름 회사 관련해서는 데이터가 많이 쌓여 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내가 퇴사하기 직전 IT 회사에 들어왔던 어느 과장님의 일화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S사 커뮤니케이션즈라고 싸이월드와 네이트를 운영하는 회사 였는데 나는 싸이월드에서 일을 하는 말단 사원이었다. 결국 회사가 망할 거 같아서 1년을 겨우 채우고 나가게 되었는데 신기한 건 내가 나가고 나서 몇년 후 회사가 정말 망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한국 경기가 그렇게 안 좋은 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망한 걸 보면 회사가 정말 망조이긴 했고 이걸 말단 사원인 내가 느낄 정도였으니 너무 당연한 결과인가 싶기도 하다. 실제로 내가 회사를 다닐 당시에 회사의 이런 저런 지표를 조사해서 보고를 하는 입장이었는데 거짓말을 하나도 안 보태고 매일 매일 트래픽 지표가 하락하는 걸 보면서 망조를 미리 예상하긴 했었다.

그렇게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이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서 탈출해야 했다. 그렇게 퇴사를 결심하고 내 후임으로 갑자기 나보다 10살이나 많으신 분이 들어오게 되었다. 다들 당황스러운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과거 나름의 경쟁사인 다음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분이었고 부모님의 병간호를 하느라 10년 동안은 직장 생활을 하지 않으시다가 다 알다시피 팀내의 차장님 인맥으로 내 후임으로 들어오시게 되었다. 

일단 사람은 좋아 보였다.

아니

실제로도 굉장히 좋은 분이었다. 

인상만 봐도 너무 좋으신 분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 분에게 악감정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경력에 비해서는 일을 너무 못 해서 그 당시 팀 안에서는 이 분을 대놓고 무시하는 분위기가 존재했었고 심지어 이 분을 데려오신 분 역시 결국 이 과장님을 버릴 수 밖에 없었다고 퇴사 후에 들었다. 

그러면 

얼마나 일을 못했을까.

사실 나는 자세한 사정을 알기는 어렵다. 내가 퇴사하기 불과 한 달 전에 들어오신 분이고 나는 내 업무를 인수인계하느라 시간이 없었기에 이 분을 파악하기가 더 힘들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내가 하는 간단한 업무도 이해를 잘 못 하셔서 인수인계도 쉽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나를 가르치면 그래도 반 정도는 알아 들어야 하는데 하나를 알려주면 곧바로 까 먹고 다시 물어보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분명 비슷한 회사인 다음에서 꽤나 오랜 기간 일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고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고 하지만 IT 기업에서 하는 일이 크게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이 정도로 차이가 난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학벌도 좋아서 머리가 안 좋은 것도 아니었는데 그 유명한 K대를 나오신 분이어서 다들 처음에는 어느 정도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분과 회의를 한 번 해보고는 다들 기대치를 내려 놓았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게 당시 싸이월드의 경쟁사였던 페이스북과 트위터같은 떠오르는 해외 소셜 미디어 회사를 분석해 오라는 팀장님의 명령이 이 과장님에게 내려졌다. 아직 근무에 투입할 정도의 실력은 아닌 터라 나름 대학생들이 할 만한 쉬운 숙제 혹은 과제가 주어졌고 이 분은 하루 종일 그걸 하면서 시간을 보낸 이후 오후 늦게 회의 시간에 간단히 발표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런데 

결과가 지금 생각해도 좀 충격이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그런 분석을 시켜도 이렇게까지 대충 해오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게나 많은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단답형으로 분석을 해왔고 그 단답형 분석 역시 누가 봐도 성의 없이 해온 게 보여서 팀장을 비롯한 팀원 모두가 회의 내내 표정을 제대로 관리하기가 힘들었을 정도였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싸이월드에 비해서 이런 부분이 강점이고 이런 부분이 약점이고 여기에서 싸이월드가 이런 식으로 더 잘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었다.

페이스북은 외국인들이 많이 쓴다.

이게 전부였고 다른 서비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정도 소셜미디어를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5분 정도만 생각해도 나올 수 있는 답변이었다. 단순히 머리가 안 좋다는 것보다는 성의도 없어서 모두가 경악했는데 그 이후 팀장님과 따로 면담을 하기는 했는데 내가 인수인계하는 한 달 내내 이런 식이어서 인맥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재취업을 하지는 못 했을 거 같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그래도 유일한 장점이라면 

사람이 정말 좋았다는 거다. 

그래서 아무도 대놓고 뭐라하지는 못 하는 분위기였다. 하긴 일도 저렇게 못 하는데 성격까지 나빴다면 거의 매장당하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다. 나도 이런 저런 회사에서 다양한 일을 하면서 일 못 하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보았는데 이 정도로 일을 못 하신 분은 손에 꼽아서 아직까지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그 과장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변화가 빠른 IT 회사를 10년 만에 돌아 왔으니 모든 게 어색하고 낯선 게 이해가 가기도 한다. 심지어 제주도에서 사람들과 교류도 없이 10년 동안 부모님 병간호를 혼자서 한 사람의 생활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내가 회사에 더 오래 있었다면 친해질 수도 있었을 거 같은데 나는 퇴사하고 나서 그 회사와는 아예 인연을 끊어 버렸다.

몇몇 소수의 동기를 제외하면 연락도 잘 하지 않았고 기억을 떠올려 보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퇴사한 이후 회사는 본격적인 망조로 접어 들면서 정리 해고를 시작했고 100명이 넘는 나의 동기들은 거의 다 회사를 나와서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공중분해 그 자체였다. 그나마 나의 동기들은 어린 데다가 경력도 2년이 넘어서 나름 좋은 대기업으로 이직을 할 기회가 있었으나 나이는 많고 애매한 위치의 과장님이나 차장급들이 이직을 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나중에서야 들었다.

아마 그 사람은 좋은데 무능력한 과장님도 좋은 회사로 이직을 하시지는 못 했을 거다. 인맥도 없었을 테고 그나마 있던 인맥으로 컴즈를 들어 왔는데 여기는 침몰하는 배라는 걸 아마도 본인은 모르시지 않았을까. 

지금도 가끔 그 분의 해맑은 미소가 떠오른다.

하지만 사람 인생은 모른다고 어디에선가 잘 지내시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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