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 내내 했던 현실적인 고민
애니바디의 승무원 추억팔이
10년 동안 비행하면서 가장 스트레스 받았던 고민
홍콩 캐세이 퍼시픽에서 10년 가까이 일하면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던 일은 냉정히 따지고 보면 승무원과는 직접 연관이 없기는 했다.
내가 홍콩에 거주하면서 매일같이 고민하던 건 다름 아닌 집값과 월세 문제였다.
알다시피
홍콩은 지독한 월세로 유명한 도시다.
샌프란시스코나 런던 만큼은 아니지만 홍콩의 집값은 월급 대비 심각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기에 승무원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나는 입사 후 만으로 8년간은 월세를 회사로부터 받는 계약 조건으로 입사를 했다는 사실이다.
아마
지금은 3년 정도만 보조를 해주는 걸로 알고 있고 이 추세대로라면 아마 월세 보조를 해주는 조건이 조만간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홍콩은 월세가 높은 도시 중 하나여서 회사에서 주는 월세 보조금이 없다면 버티기가 정말 힘들다. 나는 그나마 조건이 좋은 편이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거지 나도 이 월급 받으면서 월세까지 내야 했다면 아마 10년은 커녕 3년도 못 버티고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일단
승무원들은 비행을 가야 하기에 공항 근처에 살아야 한다. 우리 나라로 치면 인천 공항 근처나 김포 공항 근처에 살아야 하는데 이 주변은 작은 아파트들이 없어서 오히려 혼자 사는 아파트를 구하는 게 더 어려웠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살던 침실 하나가 딸린 아파트 역시 월세가 2백만원 가까이 했었다.
내 월급이 겨우 350만원 정도였던 걸 생각해 보면 회사 보조가 없었다면 현실적으로 참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홍콩 아이들의 말을 들어 보면 중국인들이 무작위로 홍콩에서 집을 구매하기 전까지는 이 정도로 월세가 비싸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전까지는 방 두 개 아파트 월세가 홍콩 달러로 7천 불 정도였는데 내가 다닐 시절에는 방 두개도 월세가 1만 5천불이 넘어 갔다.
지금은 아마 더 비싼 것으로 알고 있다.
집값은 떨어지고 있으나 최근 캐세이가 공격적으로 외국인 승무원들을 많이 채용하면서 승무원들이 많이 사는 지역의 월세가 많이 올라 갔다고 들었다. 출퇴근이 어렵긴 한데 어차피 캐세이 퍼시픽 승무원들은 단거리 비행이 많지 않으니 회사와 거리가 좀 멀더라도 살기 편하고 월세가 조금이라도 저렴한 곳으로 가는 걸 추천한다.
그러나 교통비와 출퇴근 시간을 고려하면 뭐가 더 나은 선택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10년 만에 그만두고 나오긴 하였으나
일하면서도 회사가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보다는 오래 일할 마음이 있었다. 정년 퇴직을 해도 될 정도라고 스스로는 생각할 정도였는데 그러한 생각을 하다 보니 미래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집값이라는 게 오르기만 하고 떨어지는 경우가 잘 없다 보니 만약 회사에서 월세 보조가 끊기면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고민이 입사 이후부터 항상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초반 1-2년 간은 아무 생각없이 회사를 다녔고
원래 짧으면 3년 길면 5년 정도 다니고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던 터라 집값에 대한 고민은 처음에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 다닐수록 다닐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특별히 기술이나 능력도 없는 터라 여기에서 오래 버티고 싶은 마음이 들수록 현실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한국인 동료들이 모이면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회사 보조금이 사라지면 월세를 어떻게 감당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다. 다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거고 승진을 하고 월급이 오른다고 해도 월세가 계속 오르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승무원이라는 일이 좋다고는 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가 바로 월세였다.
그러나 이런 고민을 할 사이도 없이 갑자기 들이 닥친 코로나 위기로 회사는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났고 우리들의 계약 조건은 보다 더 안 좋은 쪽으로 바뀌었다. 나 역시 이에 대해서 실망을 하고 회사를 나오긴 했으나 지금 버티었다고 해도 월세 내고 생활비 내느라 아마 돈을 거의 못 모았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너무 쓸데없이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매일 매일을 불안하게 산 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애초에 회사에서 얼마나 일할 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승무원 생활을 즐기고 홍콩 라이프를 재미있게 보내도 되었을 텐데 나는 쓸데없이 밤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미래에 마주하게 될 미지의(?) 월세 문제로 인해 스스로를 불행 안에 가두는 시간이 쓸데없이 많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홍콩이나 승무원 생활이 불행한 건 아니었는데 월세에 대한 고민은 생각보다 컸기 때문에 은근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지금에 와서 보면 참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싶다. 애초에 내가 뭘 어떻게 한다고 월세라는 문제가 해결되거나 사라지는 거도 아니고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데 왜 그런 고민에 시간을 낭비한 건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그 이후
나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워낙 걱정이 많은 성격이어서 자연스럽게 되는 건 아니지만 걱정이 스멀 스멀 올라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현재에 집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자. 그 외에는 다 쓸데없는 시간 낭비 그리고 에너비 소모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10년이 아니라 1년 앞도 내다 보기 힘든 게 인생 아닌가.
그저 승무원 생활 재미있게 하며 홍콩에서도 흥미롭게 보냈으면 좋았을 텐데 인간은 항상 다 늦고 나서 후회를 하게 되는 거 같다. 그래도 좋은 동료들과 지인들 덕분에 홍콩 생활은 너무 재미있었다. 지금 만약 나처럼 외국에서 승무원 생활을 하고 있다면 현재를 즐기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자.
현재에 집중하자.
어차피 내가 걱정한다고 바뀌는 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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