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지루한 호주 시민권자의 라이프

 애니바디의 호주 참견 

[호주 워킹 홀리데이 이야기]

그토록 원하던 호주 시민권을 따고도 그 아저씨는 왜 그렇게 외로워 보였을까

지금으로부터 

벌써 

15년도 더 된 일이다. 

나는 호주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아서 호주를 두 번이나 갔다. 

보통 농장 일을 하고 두 번째 비자를 받으면 한국에 잠시 들어 갔다가 바로 들어와서 비자를 연장하여 일을 하는 경우가 당싱는 일반적이었다. 아마 지금도 그러할 텐데 나는 농장 일을 하기는 하였으나 호주에서 계속 있을 마음이 전혀 없었기에 한국으로 들어와서 학업을 마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 호주와 두 번째 호주의 느낌이 많이 다르다.

그리고 시간 텀도 길다. 

시간 차이가 5년이나 존재하고 

그래서 그런지 

그 사이에 호주도 많이 바뀐 느낌을 받았다. 

뭐든지 처음이 좋아서일까.

나는 호주에서 보낸 2000년대 중후반의 기억이 그래서 특별하고 더 좋게 남아 있다.

당시 

호주 

퍼스에서 10개월 정도의 시간을 보내다가 한국으로 돌아 왔다. 

앞으로 이야기를 더 풀어 나가겠지만 서호주의 남부 지역에서 농장 일을 4개월 정도 하다가 서호주 최대 도시인 퍼스로 올라 왔다. 서호주에서는 가장 큰 도시이지만 호주에서는 애들레이드와 함께 존재감이 전무한 작은 도시 중 하나다. 

심지어 

퍼스에 사는 현지인들도 퍼스를 시골이라고 부르며 무시한다. 

볼거리가 크게 많지 않고 도시 자체의 규모도 작아서 인구 역시 많지 않다.

나는 대학을 입학한 이후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다소 아담한 사이즈의 퍼스라는 도시를 그래서 참 좋아했었고 지금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도시 중 하나가 바로 퍼스다. 그런 퍼스에서 농장 일을 마치고 일을 구해야 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건 바로 살 집을 구하는 문제였다.

당시 나는 차가 없었기에 대중 교통편이 좋은 곳을 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러하기에 선택지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리 장롱 면허라고는 해도 차를 하나 샀었어야 했지만 당시에는 사고가 날까 봐 무서워서 엄두도 내지 못 했다. 

그만큼 쫄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한인 커뮤니티에서 구하게 된 쉐어 하우스.

호주에서 영주권을 따고 정착한 한인 가족의 집이었는데 거기서 3개월 가량을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중년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어린 아들

로 구성된 평범한 가족이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다가 집주인 분인 나와 출신 대학교가 같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런지 유독 나에게 이야기도 많이 하시고 잘 해주신 기억도 남는다. 나보다는 20살 가량 많은 분이었지만 호주로 와서 정착하신 분이어서 나도 호기심에 시간이 날 때마다 그 분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명문대를 나와서 

서울에서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다가 

갑자기 회사로부터 정리 해고를 당하고

방황하던 중

호주 공장에서 몇 년간 일하면

영주권을 준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부인과 함께 호주로 오게 되었고

지금까지 

평범하게 살고 있다.

결국 어렵게 영주권을 따서 지금까지도 공장에서 안정적으로 일을 하고 계셨다. 

지금이나 그 당시나 호주 영주권을 취득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진로나 미래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이 없는 나였지만 나름 부럽기도 했다. 특히나 가족까지 있다면 그렇게까지 외로울 일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분은

내가 살면서 본

가장 외로워 보이는 사람 중 하나였다. 

가족도 있고

원하던 영주권도 얻어서 

호주에서 살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몸에 새긴 사람이었다.

왜 그럴까

를 생각해 보았다. 

남들은 그토록 원하지만 얻지 못 하는 호주 영주권이라는 자격을 얻었음에도 왜 그렇게까지 외롭게 지내시는 건지 이해가 조금 안 가기는 했다. 반면 호주에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아들은 이미 현지인과 비슷한 정서로 자라기 시작해서 부모와 이야기가 통하지 않고 가족보다는 친구들과 밖에 나가서 노는 일이 더 많았다.

유일하게 대화가 통하는 한국인 부인 역시 누구보다 사교적이기에 남편보다는 밖에서 만난 같은 한국인 이민자들과 어울리는 일이 많았다. 

이런 거 보면

여성들은 확실히 사회성이나 사교성이 남다르다.

공감 능력이 좋아서일까. 

하지만 

그 분은 성격도 조금 내성적인 데다가 한국에서 명문대 그리고 대기업을 나오신 분이라 본인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으셨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러하기에 

어린 나에게 이런 저런 넋두리를 하신 거겠지.

본인 입으로 

외롭다는 이야기를 하신 건 아니지만 퇴근 후 가끔 마주치면 TV를 보거나 신문 정도만을 보며 사는 삶이 절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한국에서의 모든 걸 포기하고 호주로 오신 걸테고 영주권도 따서 이제 여유롭게 살기만 하면 될텐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걸 보면 

본인의 성격이 저렇게까지 내성적이면 

외국에서의 삶 역시 외로울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여유로운 삶을 얻었을지 모르지만 남은 여생을 저렇게 친구도 없이 보내야 하는 건 그야말로 사무치게 끔찍해 보이기까지 했다. 

사실 영어가 유창하지는 않으니 호주 현지인 친구를 사귀기는 어렵다고 해도 호주 역시 이민자 천국이기에 영어를 얼마나 잘 하는지와 상관없이 자신과 비슷한 정서를 가진 이민자와 교류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나라 중 하나다.

나 역시 

호주에서 지낼 당시에

한국인 물론 그리고 대만 혹은 일본인들과 자주 어울렸던 기억이 있을 정도다. 

아무리 영어가 유창해도 정서가 다른 유럽인들이나 호주 현지인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건 한계가 조금 있긴 하다. 

그 분처럼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와 주길 기대하며 저렇게 소극적인 태도로 밖에도 안 나가고 집에만 있으면 사회 생활을 하기가 참 힘들다. 

가끔 보면 

우리 나라보다 여유로워 보이는 나라에 가서 살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무조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던데 냉정히 말하면 결국 본인이 변하지 않으면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마 지금은 그 분 역시 나이가 꽤 드셔서 살아 계실지도 의문이긴 하지만 저런 모습을 보면서 결국 극한의 상황이 아니라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건 장소가 아니라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은 친구도 많이 만들고 대화도 많이 하시면서 지내셨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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