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 - 이 직업의 유일한 장점
애니바디의 승무원 추억팔이
승무원을 10년 가까이 하면서 느낀 유일무이한 장점
어쩌다 보니 외국에서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안고 10년 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이제는 다 마무리하고 한국에서 지내고 있기는 하지만 돌아 보면 10년이라는 시간은 절대 짧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긴 시간인 건가 하면 또 잘 모르겠다. 애매해 보이는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이후 그만둬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만둔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다음 글에서 언급을 하겠지만 크게 보면 체력적으로 한계가 온 걸 내 몸이 느끼는 순간 마음을 먹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가끔 꿈에서까지 승무원 소재가 등장하는 걸 보면 징하게 그리워하긴 하나 보다.
갑자기 낯선 도시에서 잠을 깬다.
아침 9시가 브리핑 시간인데 10시까지 자 버렸다.
등에서 식은 땀이 난다.
왜 알람 전화가 안 왔지?
어떻게 하지?
나 회사에서 경고 먹나?
사실 생각해 보면 그리 좋은 꿈은 아닌데 신기하리만치 생생하다. 마치 정말 회사에서 경고를 먹고 관련 보고서를 내야만 할 거 같다. 사실 잠에서 깨고 나서도 이게 꿈인지 실제인지 분간이 잘 안 갈 정도로 생생해서 가끔은 소름이 끼친다.
실제로 승무원 시절 이렇게 늦잠을 자서 아침 비행을 가지 못 하는 악몽을 자주 꾼 적이 있다. 실제로는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으나 그래서인지 아침 비행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비행 중 하나였고 신입 시절에는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춰 놓고 자면 4시 정도에나 잠이 들어 한 시간 정도만 자고 비행을 해야 한적도 여러 번이다.
그래도 이렇게 꿈까지 꾸는 거 보면 아직도 승무원 시절이 내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아직 그만둔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가 그렇게 좋았냐?
라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이거다 라고 할 수는 없으나 그래도 내가 황홀경을 느낀 순간들을 언급해 보자면 여러 가지를 들 수가 있다.
일단, 난생 처음 미국 그것도 뉴욕이라는 도시를 갔을 때의 생생한 느낌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내가 다니던 항공사는 뉴욕 체류시 승무원 호텔이 완전 시내 한복판에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호텔 체류비만 어마무시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만큼 위치가 좋았어서 타임 스퀘어를 걸어서 겨우 5분이면 당도할 수 있었다.
내가 지내는 홍콩에서 뉴욕까지의 비행 시간은 어림 잡아 17시간이다.
그 긴 시간 덕분에 연차가 조금 차서는 뉴욕 비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나 그래도 처음으로 간 뉴욕에 흥분을 감추기 어려웠다. 심지어 그 비행에서 갤리 대장을 잘못 만나서 17시간이 조금 힘들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힘든 비행을 마무리하고 밤 9시가 넘어서 호텔에 겨우 도착했다.
현금으로 체류비를 받고 나서 호텔 방으로 바로 올라가서 옷을 대충 갈아 입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미국이 치안이 안 좋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밝은 시내에서 무슨 큰 일을 당할까 싶었다. 17시간 비행 그리고 20시간 가까이 유니폼을 입고 있어서 체력은 바닥이었으나 타임 스퀘어의 야경을 내 두 눈으로 꼭 확인하고 싶었다.
아직 쌀쌀한 바람이 부는 봄날씨였기에 호텔 정문을 나가자 나에게 불어 오는 바람까지 완벽했다.
그렇게 당도한 뉴욕의 그 유명한 타임스퀘어.
그동안 무수하게 많은 미국 영화들에서 배경으로 나온 이 장소에 내가 와 있다는 게 초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밤 10시 가까이 되는 시간이었으나 워낙에 유명한 관광지이기에 타임 스퀘어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다들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사진을 찍고 웃으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실 냉정하게 보면 타임 스퀘어는 광고판을 제외하면 뭐가 없기는 한데 장소가 주는 상징성 덕분에 나도 타임 스퀘어를 보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와 이게 뉴욕이구나.
이게 타임스퀘어구나.
하고 내적 환호를 내질렀다.
늦은 시간이라 상점이나 가게도 다 문을 닫아서 딱히 할 게 없어서 타임 스퀘어만 보고 10분 만에 바로 돌아와서 씻고 잠들었다. 20시간 동안 유니폼을 입고 깨어 있는 건 아무리 어린 나라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타임스퀘어를 눈으로 담은 걸 제외하면 한 게 전혀 없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황홀했다. 반짝이는 눈으로 풍경을 담으면서 다시 한 번 승무원하기 잘했다라고 나를 칭찬해 주었다.
정말 잘 했어.
그런 순간들이 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평생토록 뇌리에 남는 그런 기억들 말이다. 나에게는 처음 당도한 뉴욕의 타임 스퀘어가 그러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미국 비행이 유독 많아서 미국 비행을 연간 10번 가까이 가긴 했는데 나에게는 미국하면 일단 뉴욕이 떠오른다. 첫인상이 그 정도로 강렬했다는 말이다.
심지어 같은 달에 뉴욕과 도쿄 그리고 파리를 한 번에 간 적도 있다.
누군가 승무원을 그만둬서 가장 아쉬운 게 무어냐고 묻는다면 나는 지금도 이렇게 대답한다.
여러 도시에서 하루나 이틀 정도 체류하면서 마치 현지인처럼 슈퍼마켓도 가고 상점도 가고 식당도 가고 했던 일상들의 가장 그립다고 말이다.
뉴욕에서는 유명한 북창동 순두부로 주린 배를 채우고 조금 더 걸어가서 센트럴 파크를 거닌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도쿄의 신주쿠에 가서 잡동사니 쇼핑을 즐긴다. 게다가 이틀 뒤에는 파리에서 마카롱을 입에 물고 에펠 타워를 보고 있다.
말만 들으면 비현실적인 거짓말 같은 삶이 승무원들에게는 실제로 가능하다.
나도 사람인지라 비행기에서 고생하며 일한 건 하나도 안 그리운데 이 추억만큼은 평생 가지고 가고 싶다.
일본이야 가까우니 다시 가보겠으나 유럽이나 미국은 앞으로 다시 갈 일은 없을 거 같아서 더 아련하다. 아니 다시 못 갈 걸 알기에 더 그리운 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사실 미국이나 유럽은 승무원 시절 지겹도록 많이 가서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아직까지는 안 든다. 한 10년 정도 지나서 여행으로 가보면 좋을 듯하다.
그래서 나는 젊은 데다가 체력이 되고 운이 좋다면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한 번 정도는 해봐도 좋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3년 정도 하고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고 심지어 나와 같이 트레이닝을 받은 홍콩 동료는 의사인데 승무원을 해보고 싶어서 2년 동안이나 비행을 한 친구도 있었다.
물론 지금 다시 승무원하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겠지만 아니 오히려 지금 그만두었기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둘 수 있는 거 같기도 하다.
그래도 정말 즐거웠다.
나도 나이가 먹은지라 승무원에 대한 추억을 완전히 잊어 버리기 전에 그리고 희미해지기 전에 많은 이야기들을 남겨 보고 싶다.
다시 한 번 생각해도 너무나 즐거운 그리고 소중한 추억이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