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항공사 면접의 추억 2부

 애니바디의 승무원 추억팔이 

[소소한 승무원 이야기] 

그렇게 나는 승무원이 되었다

드디어 마지막 파이널 면접 날. 

긴장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동안 아이돌 오디션 선발 과정처럼 하나하나 통과해서 올라 왔는데 마지막 관문 역시 무조건 통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승무원 면접이 아예 처음이었고 영어로 하는 면접도 생전 처음이었던 터라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이 정도까지 올라온 것도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그 당시 백수였던 나는 그래도 마음 속으로는 무조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날도 역시나 돈 내고 받은 메이크업으로 꽃단장을 하고 마지막 장소로 향했다. 

지금은 토익 점수를 내는 걸로 바뀌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영어 듣기 시험같은 걸 따로 보았었다. 기내 환경을 재현한다고 이런 저런 소음이 섞여 있어서 제대로 알아 듣기가 힘들긴 했으나 어찌저찌 문제를 다 풀긴 했다. 그리고 파이널 면접을 위해 회사에서 가지고 오라고 한 서류들을 회사 관계자들에게 제출했다. 

사사로운 과저을 마치고

조금 대기하다가 시작 된 일대일 면접. 

체감상 10분 정도인데 실제로는 한 40분 정도를 본 듯한 파이널 면접은 말 그대로 심층 면접이었다. 내가 제출한 서류를 보시면서 끊임없이 꼬리 질문을 하시는데 압박 면접은 사실 아니었고 정말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듯이 물 흐르듯 편하게 면접을 보았다. 

아무래도 

승무원은 서비스업인 터라 내가 그동안 서비스업에서 일한 경험을 위주로 많이 물어 보셨다. 고객에게 한 특별한 서비스는 없는지 그리고 힘든 여건에서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물어 보았다. 후반부에는 외국 생활하는 데에 크게 불편함이 없는지에 대한 질문도 포함되었다. 마지막으로 면접을 마치기 전 질문할 게 있냐고 물어 보셔서 회사에 남자 승무원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서 질문해 보았다.

지금은 캐세이도 남자 승무원이 많지만 그때 면접관이 못해도 10% 정도는 된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가서 일해 보니 정말 그 정도 비율로 남자 승무원들이 있었다. 한국인 합격자들 중에서도 남자는 딱 10% 정도였다. 

지금은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으니 혹시 남자인데 주저한다면 자신있게 도전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다행스럽게도 

일대일 면접이어서 떨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면접관이 굉장히 잘 대해주셔서 안심하고 볼 수 있었다. 

면접이 끝난 직후 바로 홍콩 비자 관련해서 서류를 작성하고 나왔다. 거의 다 마무리가 된 건데 그 자리에서도 정확하게 입사가 확정이 된 거라는 이야기는 해주지 않아서 의아하긴 했다.

그리고

난 그 이유를 얼마 안 가 바로 알 수 있었다. 

당시 

그리스 경제 위기로 유럽의 경제가 안 좋을 때여서 캐세이는 갑자기 모든 채용 과정을 중단했고 한국인 채용 역시 중단되었다. 특히 한국인들은 모든 채용 과정이 마무리가 되었고 100명이 넘는 인원이 최종 면접을 통과하여 채용되었으나 너무나 급작스럽게 중단이 되고 말았다. 2008년에도 경제 위기 덕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하던데 이번에도 역시나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믿기 힘들었지만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2012년에 면접을 한 번 보고 

일년이 훌쩍 지나서 다시 재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을 본 지 반년이 지나면 무조건 다시 면접을 봐야 하는 게 회사의 규정이라고 하는데 캐세이에 대한 미련이 많았던 나는 비굴하긴 하지만 다시 재면접을 보러 갔다. 

2012년 4월에 처음 면접을 보았고 2013년 9월에 면접을 다시 보았으니 참 그 사이 텀이 길었다. 그 사이에 나는 호주에 가서 힐링도 하고 일도 하고 있었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지옥 같기는 하였으나 왜인지 나는 꼭 승무원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서 불안한 마음이지만 진득하게 기다린 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힘들긴 했다. 

그렇게 다가온 재면접의 날. 

아무래도 다시 100명 정도만 확인하러 온 거라 일대일 면접이긴 하였으나 면접 시간은 10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100명이 넘는 인원을 다 데려가려고 온 게 아니었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탈락했다. 

정말이지 처참하고 불안했다. 

그리고 역시나 떨어진 그 분들은 멘탈이 무너졌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캐세이만 기다려 왔을 텐데 재면접을 보고 나서 탈락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을 거다. 

왜냐하면 그 소식을 듣는 내가 그랬으니...

면접을 기다리던

나 역시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나는 바로 면접에 들어가야 하는데 단체 카톡방에서 면접을 탈락했다는 이야기가 들려 오면서 다들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일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렸는데도 이렇게 가차없이 탈락시키는 회사가 너무 야속했다. 

그렇게 떨린 마음을 안고 들어간 재면접은 처음 면접 때보다 훨씬 더 압박 면접이었다. 누가 봐도 면접관은 내가 대답하기 힘들 질문들만 골라서 했고 나는 진땀을 흘리며 겨우겨우 대답했다. 이미 떨어진 사람들이 많았던 걸 알기에 나 역시 순간적으로 나 역시 여기까지라는 걸 직감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할 만큼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캐세이와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게 실감나면서 면접 막바지에는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면접관이 없었다면 아마 울음을 터뜨렸을 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마음을 정리하고 있을 때 거짓말처럼 면접관이 홍콩 비자 관련해서 사인을 하고 가라는 합격의 신호를 보냈다.

벙찐 상태로 홍콩 비자 관련해서 사인을 하고 나왔지만 그로부터 몇 달 뒤 정말 입사가 결정되었다는 메일을 받기 전까지 안심할 수가 없었다. 이미 한 번 입사가 미뤄진 회사라 홍콩에 당도할 때까지 안심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마음도 단단해진 상태여서 차분하게 기다렸다.

그렇게 10월에 최종 합격 메일을 받고 11월에 입사 날짜가 정해지고 12월 초에 홍콩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 10년이나 비행을 하며 승무원 유니폼을 벗었다. 

벌써 처음 면접을 본 지가 13년이나 되어 간다.

시간이 참 빠르다.

나의 추억이 기억에서 다 사라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승무원 추억 관련해서 이야기를 남겨 보고 싶다. 면접 관련 기억도 원래는 생생하게 기억이 났는데 이것도 시간이 워낙 오래 지나다 보니 벌써부터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최대한 기억을 떠올려서 작성해 보고자 한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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