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항공사 면접의 추억 1부

애니바디의 승무원 추억 팔이  

[소소한 승무원 이야기]

흥미진진한 외항사 서바이벌 면접의 기억

나는 

두 번의 

승무원 면접을 보고 결국 원하던 외항사(외국 항공사의 줄임말)에 입사할 수 있었다.

내가 면접을 본 항공사는

카타르 항공

그리고

캐세이 퍼시픽 항공 

결국 캐세이 퍼시픽 항공에 최종 입사하게 되었지만 카타르 항공 역시 한국 학원 대행으로 이루어진 1차 면접을 통과해서 카타르 항공 인사팀이 와서 보는 2차 면접까지 가서 볼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현지인 면접관들의 눈에 들지 않아 고배를 마실 수 밖에 없었다. 

카타르 항공 면접은 별 게 없긴 해서 굳이 써야 하나 싶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에서 겨우 두 번의 승무원 면접이라 10년이 지난 지금도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일단 

카타르 항공 면접부터 

이야기해 보면

그 당시 나름 유명한 승무원 학원에서 1차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나는 그 학원을 다니고 있지는 않았지만 학원 수강생이 아니어도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면접관은 카타르 항공에서 남자 승무원으로 일하시다가 부사무장으로 은퇴하신 분이었다.

면접을 마치고 나서 그 분이 나에게 다른 항공사도 붙었냐고 물어 보셔서 솔직하게 캐세이 퍼시픽 면접을 붙었으나 입사가 지연되었다고 이야기 드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참 쓸데없이 솔직하다 싶긴 한데 이건 성격적인 부분이라 어쩔 수 없긴 하다. 

그렇게 1차 면접을 통과하고 

2차 면접은 부산이라는 말을 듣고 잠시 좌절하기는 했었다.

그 당시에는 서울에서 지내고 있었고 부산은 아무리 KTX를 탄다고는 하지만 물리적으로 너무 먼 거리였던 데다가 붙는다는 확신도 없는 상태로 교통비로만 거의 10만원을 써야 하는게 조금 부담이었다. 

그래도 

한 번 시도나 해 보자하면서 기차에 올랐고 아침 일찍 메이크업과 헤어도 받고 가야 했기에 면접 전날 미리 가서 게스트하우스에서 자려고 예약까지 걸어 두었다. 다행히 늦지 않게 화장과 머리 손질을 받고 면접장에 당도할 수 있었는데 여성 분들만 거의 50명이 넘었고 남자는 나 포함 단 2명이었다. 

그 때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예상은 

역시나 틀리지 않았다. 

나를 포함해 그 남자 분도 결국 면접을 통과하지 못 하셨고 서로 의기소침한 상태로 아무 말 없이 면접 장소를 떠나게 되었다. 

옷을 갈아 입을 장소도 마땅치가 않아서 좁은 화장실 칸에서 힘겹게 갈아 입으면서 현타가 오지게 왔던 것도 기억이 난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긴 한데 그 당시 카타르 항공은 한국에서 진행된 면접에서는 의도적으로 남자를 전혀 뽑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종종 카타르 항공에 입사하시는 한국인 남자 승무원들이 있었으나 한국에서 열린 채용에서는 한국인 남자 분들이 채용되는 경우가 없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개고생한 건데 카타르 입장에서는 성차별 문제로 인해 한국에서는 남자를 안 뽑는다고 공식적으로 이야기하기 애매했을 테니 아마 공지를 하지 않았을 테고 애초에 중동 항공사는 투명한 기업 운영을 하지는 않아서 어느 정도 납득을 하기는 했다. 

그리고 

그 이전에 본 캐세이 퍼시픽 면접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캐세이 퍼시픽 면접 이야기는 블로그나 다른 매체에도 많이 했는데 계속 블로그를 지우고 새로 파고 하다 보니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남겨본 적이 없다. 

특히 

네이버는 같은 계정으로 겨우 3개의 블로그만 만들 수 있기에 어쩔 수 없이 블로그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구글은 그럴 필요가 없어서 아마 이번에 남기고 다시는 지우지 않고 평생동안 간직하려고 한다. 

캐세이 퍼시픽 면접은 처음 보는 승무원 면접이고 어쩌다 보니 최종 면접까지 통과했던지라 그 순간 순간이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물론 갑자기 2012년 그리스 위기로 인한 세계 경제 침체로 갑자기 입사가 지연되면서 멘탈이 바사삭 무너지긴 하였으나 면접 과정 자체로만 보면 아이돌 오디션 면접 저리 가라 수준으로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이건 내가 붙었으니 재미있다고 표현할 수 있는 거지 떨어진 분들은... 

아무튼

그 당시에는 캐세이 퍼시픽은 면접 공고가 5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해서 고시보다 어렵다는 소문이 있었고 마침 내가 회사를 나오고 나서 한 달 뒤에 공고가 나와서 당시 승무원 카페가 난리도 아니었었다. 

나도 설마하는 마음으로 메일로 서류를 접수했고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서류를 통과했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합격 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같이 면접 스터디 모임을 하던 사람들 중에서 나 포함 절반 정도만 합격 메일을 받아서 지금도 어색했던 그 당시 분위기가 기억이 난다. 

메일을 순차적으로 돌린 터라 언젠간 오겠지 하며 헤어지고는 했는데 결국 나머지 절반에 해당하시는 분들은 메일을 받지 못 해서 다음부터는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운 좋게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을 준비할 시간이 보름인가 한 달 정도 있었다. 

당시 승무원 면접 경험이 전무한 나는 승무원 스터디 모임을 통해 경험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었는데 남자였던 터라 화장과 헤어 정리는 자신이 너무 없어서 면접 당일 아침 일찍 이화여대 근처 메이크업샵을 예약해야만 했다.

일생일대의 기회인데 내 손으로 망칠 수는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금손이었는지 면접을 마치고 바로 만나게 된 나의 친구들이 나를 코 앞에서도 못 알아볼 정도였다.

이러니 

여자들이 화장에 목숨을 건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아침 일찍 메이크업을 받고 면접 장소로 향했다. 

역시나 사람이 정말 많았고 승무원 면접이라서 그런지 남녀 불문하고 외모나 기럭지가 상당히 괜찮은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남자들도 은근히 많아서 서로 담소를 나누며 내 면접 차례를 기다렸다. 

처음에는 

가벼운 토론 면접이었다.

지금은 캐세이 퍼시픽도 인공 지능 면접 도구를 도입했다고 하던데 그 당시에는 그런 건 없었고 서류 통과 뒤에는 무조건 면접관이 모든 과정에 관여하면서 합격과 불합격을 나누는 시스템이었다.

1차 토론 면접은 

대충 25명 이하의 사람들이 한 번에 들어가서 보게 되었는데 면접관 한 명이 중심에 앉고 나머지 25명은 의자에 반원형으로 앉는 구조였다. 

일단 

토론 주제는 상당히 간단했다.

지금은 자세히 기억은 안 나는데 외국인 관광객이 서울로 여행을 오면 어떠한 명소와 장소 그리고 경로를 추천할지 의견을 나누는 식이었다. 그렇게 주제를 던지고 면접관은 혼자서 무언가를 막 기입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야기하는 태도나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채점을 하는 거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5분간 나누도 조별로 대표가 발표를 한 이후에 마지막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신의 의견과 감상을 1분 내외로 이야기하며 1차 토론 면접은 마무리되었다. 

승무원 면접 하면 보통 성격이 활발한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할 거 같지만 의외로 땅만 보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혼자 흥분해서 화를 내듯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어서 그 당시에도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난 너무 긴장해서 전날에 위스키를 좀 들이켜고 가서 술이 안 깬 나머지 생각보다는 편안하게 면접을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토론 면접이 마무리 된 이후

면접관이 사람들에게 부여된 번호를 호명한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호명하고 나는 호명되지 않길래 떨어지는 구나 싶었는데 부른 사람들이 탈락자들이었고 호명하지 않은 4명 정도의 사람이 합격한 사람들이었다. 좋아할 사이도 없이 면접관은 점심을 먹고 몇 시 까지 2차 토론 면접이 열리는 장소로 모이라고 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 당시 

우리 타임에서 떨어진 사람이 무려 20명이었는데 그 분들의 실망한 표정이 아직까지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렇게 

불안한 그리고 기대하는 마음을 안고 점심을 분식으로 가볍게 해결했다. 

시간이 되자 삼삼오오 2차 토론 면접 장소로 모였는데 2차 토론 면접은 총 12명 정도가 참여했었고 반반으로 나눠서 토의를 하는 형식이었다. 

토론 주제는 

너무나 유치하지만 동물원에 동물을 가두는 게 옳으냐에 대한 문제였다.

지금 생각해 봐도 승무원 면접은 토론 그 자체보다는 토론에 임하는 그 사람의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 토론 주제를 듣고 흥분하지 않고 토론에 임하는 방식이나 태도를 더 신경 쓰는 게 관건이다. 

나는 당시 찬성인지 반대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한테 한 명씩 번갈아 가면서 자신의 의견을 제한된 시간동안 피력해야 한다. 

어느 정도 1차 면접에서 통과를 하신 분들이라 그런지 다들 영어가 굉장히 유창하셨다. 나는 그 때까지도 전날 마신 술이 잘 안 깬 건지 크게 긴장하지 않고 차분하게 내 의견을 차분하게 영어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나는 2차 토론 면접도 운 좋게 통과할 수 있었다. 

2차 면접은 12명 중 총 4명 만이 통과하게 되었는데 마지막 최종 면접은 4일 뒤에 보게 된 터라 준비할 시간이 어느 정도 있어서 당일날 만난 우리 4명은 최종 면접 전까지 매일 매일 모여서 면접 준비를 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렇게 마주한 마지막 최종 면접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하도록 하겠다. 

[길이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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